(1928년 11월 10일에 로마에서 태어나 2023년 7월 6일에 같은 곳에서 죽은 엔뇨 모리코네를 추억함)
1787년에 초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작품 >돈조반니<에서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장면은 2막의 끄트머리에 등장하는 타펠무직(Tafelmusik, 연회음악) 장면일 것이다.
오페라가 종말을 향해 나아가기 직전에 돈조반니는 그의 하인 레포렐로에게 만찬을 준비시킨다. 만찬이라면 손님들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면 좋으련만 돈조반니의 이번 만찬은 시중을 드는 레포렐로를 빼고는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고독한 만찬이다. 그렇다고 음악이 빠질 수는 없으니 흥겨운 멜로디의 음악이 세 곡 흘러나온다.
레포렐로가 친절하게 곡이 나올 때마다 곡명을 외쳐준 덕분에 우리는 아는척을 할 수가 있다. 그가 "코사 라라"라고 외친 첫 곡은 1786년에 초연된 오페라 빈첸테 마르틴 이 솔러의 >우나코사라라(Una cosa rara)<의 한 곡(다음부턴 코사라라로 부르자), 그다음에 "에비바노 이 리티간티"라고 외친 두번째 곡은 1782년에 초연된 오페라 주세페 사르티의 >프라이두에리티간티일데르초고데(Fra i due litiganti il terzo gode)<의 한 곡(제목이 "코메 운 아녤로"라는 아리아지만 헷갈리니까 그냥 다음부턴 리티간티로 부르자). 세번째 곡은 레포렐로가 말하기도 전에 돈조반니가 "저건 나도 잘 아는 노래로군"이라고 알은체하는 모차르트의 1786년 오페라 작품 >피가로의 결혼< 중 피가로가 케루비노를 놀리며 부르는 "non piu andrai"다.
어째서 모차르트는 자신의 오페라에 남의 곡을 넣고 제목까지 부르게 했을까? 그건 나 같은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멈추긴 좀 아까우니까 몇 자 더 적어보자.>돈조반니<가 작곡될 무렵의 모차르트는 지금의 명성과는 달리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오페라 작곡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니콜라스 청(Nicholas J. Chong)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781년에서 1791년까지 당시에 가장 많이 공연된 작곡가는,
1위 파이시엘로(Paisiello)
2위 살리에리(Salieri!!!!)
3위 마르틴(Martin)-->코사라라를 작곡
4위 치마로사(Cimarosa)
5위 굴리옐미(guglielmi)
6위 사르티(Sarti)-->리티간티를 작곡
7위 모차르트 순이었다.
(Nicholas J. Chong, 2011, Music for the Last Supper: The Dramatic Significance of Mazart's Musical Quotations in the Tafelmusik of Don Giovanni, Current Musicology, No. 92 Spring 2011 참조했음. 이탤릭 생략)
당시에 빈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오페라는 파이시엘로의 >세비야의 이발사<였고 그다음이 사르티의 >리티간티<였다고 한다. 그리고 마르틴의 >코사 라라<가 초연되자마자 이제 갓 막이 오른 >피가로의 결혼<을 쫓아내고 인기를 독점했다고 한다. 돈조반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코사 라라<는 >돈조반니<와, >리티간티<는 >피가로의 결혼<과 스토리가 비슷하다고도 하고, 어쨌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빈에서 모차르트는 이태리 출신 작곡가들에게 쪽도 못 쓴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프라하에서는 달랐다. 프라하의 시민들은 >피가로의 결혼<에 열광했고, 특히 "논 피우 안드라이"를 아꼈다. 프라하에서만큼은 모차르트와 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다른 여느 이태리 작곡가들보다 인기가 많았으니, 다음 오페라 >돈조반니<에 이런 사정을 넣어 젠체하는 것도 이상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모차르트가 이 타펠무직 장면에 굳이 "논 피우 안드라이"를 넣은 이유가 프라하에서의 인기 때문만이었을까? 다른 이유도 있지 않을까 따져보는 것도 호사가들의 취미다. 1787년은 모차르트에게 중요한 한 해였는데, >돈조반니<를 한창 작곡하던 바로 그해 5월 28일에 잘츠부르크에서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말하길 "코멘다토레"는 모차르트의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의 반영이라고 하지만, 만약에 아버지의 죽음이 영향을 끼쳤다면 죽음을 앞둔 돈조반니를 모차르트 자신의 페르소나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흔히들 케루비노는 돈조반니의 애송이 버전이라고 부르듯이, 지금은 그냥 여자라면 좋기만 한 케루비노가 더 크면 돈조반니처럼 마초 바람둥이 오입쟁이로 변할 것이다. 무엇이 케루비노를 돈조반니로 변하게 했을까? 돈조반니가 만찬, 아마도 곧 찾아올 죽음을 직감한 만찬에서 케루비노의 운명을 노래하는 아리아를 듣는 것은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는 돈조반니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어쩌면 모차르트의 정교한 장치일지도 모른다. 냉혹한 현실에 내동댕이쳐지는 귀여운 바람둥이는 더 험악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특히 여자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것은 천재 음악 소년에서 무력감과 패배감을 느껴야 하는 성인 남자로 변한 모차르트와 다를 바 없다. 성으로 여자들을 매혹하는 것과 음악으로 청중을 매혹하는 것을 비교해보면 돈조반니를 바라보는 모차르트의 심정이 보인다. 저 자식 죽여버려야겠다.
바람둥이는 사랑을 사랑하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아 너무 심한 말인가, 바람둥이는 자신의 사랑에 여자들을 무한정으로 맞춰넣었다가 언제든지 빼내어 버릴 수 있다. 이는 음악가에게 음표와 같은 유비를 일으킨다. 한 멜로디에 집착하면 음악가는 음악을 할 수가 없다. 이 멜로디도 좋지만 저 멜로디도 포기할 수 없고, 앞으로 다가올 미상의 멜로디는 더 사랑하고 싶다는 게 음악가의 본심 아닐까? 바람둥이와 음악가는 본질적으로 한 여자와 한 음표에 머물지 않는다. 한 여자에 머무는 음악가는 가능하고 한 노래만 좋아하는 바람둥이도 가능하지만 한 노래만 좋아하는 음악가와 한 여자만 좋아하는 바람둥이는 없다. 모차르트는 오페라를 잘 이끌어가다가 갑자기 타펠무직에 이르러선 음악을 연주해야 할 가수를 의자에 앉히곤 음악을 듣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20세기 초의 근대 연극 이론가의 용어인 "페어프렘둥스에펙트"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장면에서 돈조반니는 관객이 되는데 물론 진짜 관객의 일부는 아닐지라도 오페라로부터 떨어져 나와 구경한다. 1787년 당시의 음악계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 장면에서 돈조반니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아마도 이 오페라의 작곡자인 모차르트를 봤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음표와 음표 사이를 날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얻으려 하지만 결국엔 버림을 받고 죽음을 목전에 둔 모차르트, 또는 돈조반니.
아 별것도 아닌데 쓰다 보니 지친다. 위의 니콜라스 청의 논문 제목을 보면 "최후의 만찬"이란 문구가 나오는데, 역시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타펠무직은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한다. 정반대 방향으로. 예수의 최후의 만찬이 빵과 포도주를 함께 먹고 마시면서 구원의 성사를 세웠다고 한다면, 돈조반니의 최후의 만찬은 음식을 독점하고(레포렐로를 못 먹게 한다) 스스로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예수는 죽고 다시 살아나 하늘로 올라가지만 돈조반니는 죽고 영원한 불구덩이로 빠질 것이다. 이 장면은 모차르트가 쓴 자신의 묵시록일 것이다. 그래서 >돈조반니<는, 특히 타펠무직 장면은 아버지의 죽음이 드리워진 죄책감의 투영이 아니라 자신의 파멸을 설명하는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유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쯤에서 타펠무직 장면 클립 링크 하나 올린다.
(성인 여자의 성적인 면이 드러나거나 나체가 전시되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은 보지 마세요)
https://youtu.be/Hnd5ULYG2no?t=8814
위의 영상이 싫으시면 아래 링크로
(지저분한 거 싫어하시면 보지 마세요)
https://youtu.be/J70w3nLklD4
(2023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