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남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2020. 12. 25. 00:41 posted by sawte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신 앞에 홀로 선 고독한 음악가, 경건한 신앙심에 불타오르는 음악가, 겸손하고 성실하며 거짓 없는 음악가, 이론과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 음악가, 서양 음악의 아버지와 같은 말로 치장되어 있고 또한 타당한 장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그의 일상 생활에 관해선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적했듯이, 지난 세기 독일의 음악사학자들과 전기작가들이 고의로 무시하고 누락하고 종종 은닉한 사료들도 많거니와, 대부분 바흐의 신격화에 방해되는 것들은 모른체하면서 휴지통으로 슬쩍 밀어넣었던 탓도 크다.

바흐가 유년 시절에 다녔던 학교와 교회 성가대의 악의적인 기록들을 보면 당시 학생들은 소란을 피우고, 마셔대고, 쌈박질하고, 여자애들 뒤꽁무니 쫓아다니고, 왕따시키고, 흉기를 휘두르며 다니는 악동으로 묘사되고 있고, 따라서 교사들은 견딜 수 없이 가혹한 체벌을 하거나 영원한 지옥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리라는 악담을 해댔다. 거기에다 학생들은 상습적인 성추행과 성폭행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상인 부르주아 가정에서 아이를 학교로 보내기를 꺼렸던 것은 아주 당연한 처사였다. 어린 바흐는 1년 중 258일을 결석한 적도 있는데 병약한 어머니를 간호하거나 집안 일을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댔지만 그가 왜 학교에 가기 싫어했는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1)

우리는 물론 바흐의 오타쿠는 아니고 다만 그의 음악을 즐기는 데에 그치기 때문에 자잘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를 즐기거나 그의 흑역사를 파헤칠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리고 생각해보라, 바로 내 옆에 내 유년 시절을 시시콜콜히 캐내어 퍼뜨리는 자가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은닉과 거짓말의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에피소드를 아는 것은 그의 음악을 즐길 때에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바흐가 1713년 12월 1일에서 15일까지 할레에 출장을 가서 묵을 당시의 여관이 발행한 영수증을 들춰보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여관은 그가 일을 해야 할 교회의 건너편에 있었는데, 여관은 바흐의 숙박 비용 전부를 교회에 청구했다.

유명한 바흐학자 크리스토프 볼프의 바흐 전기(2)를 인용한 기사에 소개된 내용을 따라가 보자.(3)

이 기사에 소개된 내용을 보자면,

바흐는 2주가 좀 넘는 기간동안 18그로셴(Groschen)어치 맥주, 8그로셴어치 꼬냑과 4그로셴어치 타박, 2탈러 16그로셴어치 음식을 소비했다.

18그로셴어치 맥주는 30리터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한다. 도착한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매일 2리터씩 마신 셈이다. (역시 밤마다 비닐봉투에 넣어가는 만 원에 네 캔 편의점 맥주 전통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물론 평소에 이렇게는 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때는 이때다 하며 벌컥벌컥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바흐 또한 공짜라면 독이라도 마신다는 여느 독일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걸 보여주는 자료일 뿐(...)

맥주 1리터의 가치는 어떠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1671년 자료엔 맥주 1마스(1리터보다 아주 조금 많은 양. 뮌헨 옥토버페스트에서 파는 큰 잔이 마스 잔이다.)가 2크로이처(Kr)였다(바흐는 1685년생이다). 1크로이처는 4페니히(Pfennig). 중세 시대에 어린 암탉 한 마리가 8페니히였다고 하고 한동안 그 가격이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1그로셴은 12페니히, 1탈러는 24그로셴이다. 도량형이 통일되어 있지 않아서 딱 떨어지지는 않지만 대충 가격을 이렇게 셈해볼 수 있다.

이 기사를 보면 당시에 바흐는 초 또한 아주 많이 소비했음을 알 수 있는데 밤새 작곡을 했거나 여관 사람들과 밤 늦도록 먹고 마시고 했거나 둘 중의 하나라나 뭐라나 그렇단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바흐가 어땠는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암튼 먹고 마시는 걸 즐겼다는 사실은 잘 알겠다.

모두 13명의 자식을 낳았던 두번째 부인 아나 막달레나 뷜케와의 1721년 12월 3일의 결혼식을 위해 바흐는 포도주 4통과 13마스(한 통은 84마스)에 84탈러 16그로셴을 샀다고 한다. 이는 1년 봉급의 5분의 1이 넘는 금액이었다고 하니, 바흐가 먹고 마시는 걸 좋아했다는 쾌남이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바흐는 물론 성실하고 겸손하고 사색하며 이론과 사조에 조예가 깊고 꾸준한 음악가임에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활발하고 술과 담배를 즐기며 사람들과 떠들기 좋아하고, 무엇보다 두 명의 부인과 모두 스물의 아이를 낳은 건강 체질의 남자였다는 사실 또한 그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바흐 음악은 바흐작품번호 140 칸타타 "야~~ 일나봐~~"의 사랑스런 아리아. (내가 당시 검열관이었다면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 같은데 암튼 무사통과된 ㅎㅎㅎ)

https://youtu.be/GQZP75R6Y3Q

(1)

https://www.theguardian.com/.../21/secret-bach-teenage-thug

(2)

https://wwnorton.com/books/9780393322569

(3)

https://www.abendblatt.de/.../Was-zaehlt-ist-die-Musik.html